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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城 崔氏(수성최씨)

영규게와 거경계

by "율문" 2012. 4. 2.

 

원 종 2년 (1261)에 탄생하신 영규 공은 충렬왕 초에 과거에 급제하신 후 

1302년 충렬왕 28년에 수성백으로 사성을 받는다.

거경은 서운관 부정(종4품)으로 한 문파를 이루는데 의논이 분분하다.

 

서운관은 "分至啓閉必書雲物"에서 따온 말이다

고려시대에는 태복감과 태사국을 두어서 천문 역법을 연구하였는데  태복감은 그 이후 현종 때

사천대로 사천대에서 사천감으로 바뀌었다가 충선왕이 즉위(1308년)한  이후

 태사국과 사천감을 합하여 서운관이라 칭하고 조선초까지 국립 기상청 일을 맡아본 관청이다

.거경계에서는 문혜공 시조와 동 시대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그렇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 소견으로는 거경은 경자 항렬로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고려말에 서운관 부정을 지냈다 하더라도 문혜공 5세손인 경자 할아버지와 동시대 인물로 볼 수가 있다

 

경자 할아버지도 고려말 인물로 조선 조에 들어 무과로 등과후 사정을 지내시고 증 자헌대부   병조 판서를 받으셨다.

시조 할아버지와 거경은 연대 차이도 날 뿐만 아니라 공민왕 우왕 창왕 시에도 서운관 관청으 있었으니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그러면  잠ㅡㅡ 순 으로 이어지는  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영규 ㅡ흡 ㅡ원개 ㅡ책 ㅡ경

                                  온

 

                           잠 ㅡ순 ㅡ귀종

                                         귀당

     

♣ 소윤공(少尹公) 휘봉(鳳) 사적(史蹟) ♣

 

나주인(羅州人)으로 소윤(少尹)은 탁(卓)의 아들이고 호군(護軍) 선(宣)의 손자이며 불훤재 문정공(文貞公) 신현(申賢)의 문하생이다.

여말에 벼슬이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 : 종四품)이다. 일찍이 목은 이색(李穡), 포은 정몽주(鄭夢周), 김제(金濟), 김혁(金革), 이석(李碩), 최원개(崔元凱), 신덕린(申德隣), 김주(金澍), 탁신(卓愼), 구영검(具榮儉), 김중방(金仲滂), 송인(宋寅)등 신자문인(申子文人)들도 더불어 학문을 논하고 교유(交遊)하였다.《華海師全》

 

드디어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가 건국됨에 찬역(簒逆)의 무리와 하늘을 함께 일(대(戴)) 수 없어 부친을 뫼시고 아들 시소(始巢)와 유소(有巢)를 데리고성향(姓鄕)인 나주 회진(會津)으로 돌아가 그 절의(節義)를 온정히 하였다.《世譜》

 

아들 시소(始巢)는 일찍이 정포은(鄭圃隱)을 좇아 학문을 수학,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하였다.「화해사전(華海師全)」에는 정포은선생과 옛 성인 요(堯)·순(舜)·우(禹)의 심법(心法)에 대한 문답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여말에 벼슬이 서반(西班)의 보승산원(保勝散員 : 정八품)이었으나 《世譜》고려의 운이 다함에 미쳐 스승 정포은이 혁명역도에게 참화를 당하고 마침내 조선조가 건국되자 조부와 부친으로 더불어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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