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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城 崔氏(수성최씨)

수성최씨 변의문

by "율문" 2012. 4. 10.

 

변 의 문

  대저, 족보란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관계를 기록한 책]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동양문화권의 통치이념인 충효사상의 기본적 전범이라 하겠다.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물에도 샘이 있거늘 황차 사람임에랴.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도 조상을 바로 알아 모시고 효를 행하는 방법의 하나로 족보를 만들어 전해오는 아름다운 전통을 갖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수성최씨 문중에서는 임인보(서기1722년) 간행 이래 꾸준히 맥을 이어오고 있었으니 현존하는 보책을 중심으로 그 현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경진보

1760년

기유보
1849년
1909년

무진보
대동보
1928년

정유보
대동보
1957년

정사보
대동보
1977년

정축보
종부령파보
1997년

1 世

경순왕

경순왕

경순왕

경순왕

경순왕

경순왕

2 世

은열

은열

은열

은열

은열

은열

3 世

계령

계령

계령

계령

태화

숙승

4 世

한공

한공

한공

한공

정구

일긍

5 世

경보

경보

경보

경보

숙승

이청

6 世

세린

세린

세린

세린

일긍

의화

7 世

봉모

봉모

봉모

봉모

이청

민성

8 世

태서

태서

태서

태서

의화

효인

9 世

경손

경손

경손

경손

민성

현경

10 世

혼(일긍)

효인

11 世

이청

일긍

일긍

일긍

현경

영규

12 世

의화

이청

이청

이청

 

13 世

민성

의화

의화

의화

영규

 

14 世

효인

민성

민성

민성

 

 

15 世

현경

효인

효인

효인

 

 

16 世

현경

현경

현경

 

 

17 世

영규

 

 

18 世

 

영규

영규

영규

 

 

  위 자료에서 상계를 살펴볼 때, 각보(各譜) 사이에는 극명하게 차이가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경진보에서는 17세, 전(前)기유보 이후 정유보에 이르는 네 차례 족보에는 18세, 최근의 대동보인 정사보(1977년)에는 13세, 그 후 간행된 정축보(1997년 종부령공파보)에는 11세로 각기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분명하고 확실한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바, 다름 아니라 모든 족보에는 상계문제가 뚜렷하게 명시되어 있다는 점과,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술 내용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족보의 본질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오백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천하(天下) 즉 우리가 살고 있는 땅덩어리 지구는 네모난 땅(4방)과 그를 에워싸고 있는 바다(4해)로 되어 있다고 믿었다. 땅은 당연히 가만히 있는 것이고 해와 달이 움직여 뜨고 지는 것이라 믿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진리로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폴란드 사람 코페르니쿠스라는 과학자였다. 그는 1543년 지구는 둥글고 자전한다는 학설을 발표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폭탄선언을 한 것이었다. 그후 1632년 갈릴레이가 이를 입증하여 세상을 또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 어느 누가 오백년 전 사람들을 무식했었다고 매도하고 있단 말안가?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강구하며 사는 것이 정상인의 생활이다. 족보에 관한 정보가 거의 폐쇄적이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많은 정보가 공개되고 또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양질의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에 따라 밝혀진 진실에 입각하여 과거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바르게 고친다는 것은 조상에 대한 불경이 아니라 후손들이 마땅히 해야 할 덕목이니 어찌 망설이며, 바른 행위를 한 사람을 어찌 그르다 비난할 수 있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날 대동보를 편찬하시면서 그야말로 환골탈태하는 수준으로 족보 편찬을 하신 조상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유지 보완할 의무감을 무겁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국적인 입장에서 살피고 판단해 올바르게 행하여야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중에서 대동보 편찬을 결의하고 실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난제 중의 난제가 바로 이 상계문제였다는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돌아보건대 지난 2004년 5월 7일 대종회 총회에서 수성최씨 대동보 편찬사업을 결의한 이래 제반 준비과정을 거쳐 2005년 4월 7일 편찬위원회 사무실을 개설했고 이어 2006년 3월 14일 제1차 부록편찬위원회에서 상계문제가 거론되었지만 그 후 수차례의 협의를 거쳤으나 결국 통일안 도출에 실패한 채 작금에 이르렀다.

  문제의 쟁점은 수성백 문혜공은 경순왕의 13세손(최근 대동보의 맥을 이은)이라야 한다는 주장과 경순왕의 17세손(1760년 경진보 기준)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편승하여 양측의 주장을 모두 수용해 이번 대동보에는 과거 기술된 상계를 망라해 기술하고 후손들로 하여금 연구해 밝히게 하자는 절충안이 나왔다. 실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망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현상이 아닐 수 없엇다. 그에 더하여 족척인 경주김씨와 안동김씨 문중에서도 자기들 조상에 대하여 그릇되게 우리 족보에 올리는 것을 경계한다는 뜻을 표명하기에 이르러 난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순왕 13세, 17세론이 단순한 숫자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즉 경순왕→경주김씨→안동김씨→수성최씨(13세론)과, 경순왕→경주김씨→수성최씨(17세론)으로 갈려 혈통을 달리하는 중차대한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려지지 않는 상태에서, 쉽게 말하자면 [우리는 잘 모르겠으니 후손들이 연구하여 밝혀달라]는 절충안 또한 너무도 무책임한 대안으로 뜻있는 종인들은 이것은 언어도단이라는 다수인의 의견을 모아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법언(法諺)에 [신법은 구법에 우선한다.]라는 말이있다. 이는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법원간의 충돌이 문제되는 경우 신법이 구법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자기결정의 원리에 비추어볼 때 과거의 결정보다 새로운 정보와 현실을 감안한 최신의 결정이 자기결정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46년 전 서기 1963년(계묘)에 우리 족보의 근간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개정제안이 있었다.(원문 및 번역본 별첨) 누대에 결쳐 간행되어온 족보상 상계부문의 오류를 적시한 것이다. 그 분이 바로 만오(晩悟)선생(基衡공)이시다. 당시로서는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요 놀랄만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으리라. 그분은 주장하는 것만으로 끝낸 것이 아니라 정유대동보(1957년)을 발간한지 20년도 안된 시점에서 다시 대동보 편찬을 주관하여 드디어 정사대동보(1977년)를 발간하신 것이다. 추측해 보건대 당시 충분한 협의와 동의를 얻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그분의 바로 직손 후손되는 분들이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여 바로 이 문제를 논란의 핵으로 떠올리고 있으니 당시에 편찬에 참여한 대종손 및 편찬위원장 그 외 여러분들의 혜안에 새삼 경외심을 금할 수 없다.

  그 후 종부령공 종중에서 세보를 편찬(1997년 간행)하면서 고증자료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정사보에 등재된 [태화, 정구] 두 분은 최근 발견된 지석 내용에 따라 경주김씨로 또는 숙승공의 형님과 장질로 밝혀졌다. 그로 인해 태화, 정구 두 분을 제외하고 시조 문혜공은 경순왕 11세손으로 기술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안동김씨 족보와 일치하는 것으로 현재까지도 양측 족보에 그대로 등재되어 있다.

  근자에 경주김씨 계보 연구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숙승공 이후 원강, 문웅 두 분이 누락되었으므로 그의 복원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 논리는 이미 안동김씨 문중에서도 수용하여 차기 족보 발간시 등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연유를 종합하여 수성최씨 상계를 재정립하는 차원에서 이번 대동보에 권고안대로 기술함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결론에 대하여 정체성을 거론하며 신중론을 펴고 있으나 이는 우리 시조 문혜공 이후의 계대에 관한 문제가 아니고 상계에 대한 사항이므로 굳이 정체성을 논할 계제는 아니라고 사료된다. 따라서 경주김씨 안동김씨 수성최씨는 족보상의 상계는 최대공약수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13세론을 정리하면 경순왕→은열→숙승→원강→문웅→일긍→이청→의화→민성→효인→현경→준→영규(수성백 문혜공)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족보의 기본인 상계에 대한 명료한 기술과 족보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추는 완결편을 얻었다 할 것이다. 그리하여 발간후 전질을 국립도서관과 각 대학도서관등 각계 요로에 당당하게 배포할 것이며 후대에 연구 보완을 당부할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위하여 시조 문혜공에 대한 생몰연대와 관직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심구하여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족보 편찬을 함에 있어 많은 종인이 협력하여 주신 점을 고맙게 생각하며 특히 부록편찬위원장 성암 중철선생은 불철주야 자료수집 및 정리에 진력하고 자비로 각종 고증 자료를 입수하여 관계자 여러 종인께 직접 배포하는 등 그 공로가 지대하였음을 밝히며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리는 바이다.

 

                       수성최씨 대종회장 겸 대동보 편찬위원장 24세 찬용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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