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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공(숭한) 8세

수성최씨 월농공 (세홍)

by "율문" 2012. 7. 2.

 

 




 


 

본관 ; 수성최씨

휘는 ; 세홍 (世弘)

호는 ; 월농 (月農)

선생의 휘는 세홍(世弘)이시오 호는 월농(月農)이라 하시니 지곡선생의 아우님으로 역시 그 아버님이신 시은공(市隱公)의 교훈을 받으시와 학문만을 힘쓰시다가 진사과 에 참방하신 후 나라에서 은일로 감역 벼슬을 제수 하였으나 받지 않으시고 친구들이 벼슬을 권하면 항상 시 한귀를 읊으셨으니 빈천기불이 빈천하여도 뜻을 옮기지 아니하였으니 하용녹사위 벼슬과 녹을 받아 무엇을 하리요 하시고 진위로 부터 임난중에 그 아우님들과 춘천지방으로 피화 하셨다가 수춘의 산천을 사랑하시와 짐을 춘천으로 옮기신 후 거문고와 노래로 즐기시며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장사치를 쫓아 놀지언정 세상에 이름있는 사람으로 더불어 놀지 아니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를 거간이나 중개가 일반이지만 청탁이 다르므로 누구나 청한것을 좋아하고 탁한 것을 싫어 하는 것은 이름을 위함이니 나는 이름을 위하지  아니하지만 청한 것은 취한다 하시더라 공의 친구에 송산초객이라는 이가 있어 항상 말하기를 김유신이나 강감찬과 같은 인물이라 이르더라.

 

 

수성최씨 족보 부록 313페이지 (월농선생편)

옴긴이 ; 시은공감사 ; 崔   寬    爀



최세홍(崔世弘)

본관(本貫)

  수성(隋城)

시대(時代)

 

자(字)

 

호(號)

월농(月農)

이력(履歷)

춘천문화원 <춘천의 인물>

최세홍(崔世弘)

수성최씨의 춘천입향조. 호는 月農이며 隨城伯文惠公의 九世孫이다. 逸行으로 監役에 천거 되었으나 나가지 아니했고 친구들이 벼슬을 권했으나 역시 응하지 않고 시를 지어 曰 貪賊旣不移 何用綠仕爲라 하고 시골에서 살다가 壬亂前에 식솔과 함께 춘천 산간에 들어와 도덕 을 쌓으며 琴書로 조족하다가 세상을 마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