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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城 崔氏(수성최씨)

수성최씨 세조 3세 문개(종부령)

by "율문" 2012. 7. 3.

 

 

 

 

 

 

 

 

공(公)의 초휘(初諱)는 사희(士熙)이시며, 고(考)는 휘(諱) 흡(洽) 정당문학 찬성사(政堂文學 贊成事)의 차자(次子)이시고, 벼슬이 중직대부 종부령(中直大夫 宗簿令)이시다.

공(公)은 태어나시면서부터 용모(容貌)가 헌앙(軒昻)하시고 성품(性品)이 묵중(默重)하시며 사람을 대하실 때는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고 몸 갖으시기를 천길 되는 절벽 같으시고 문장(文章)과 덕행(德行)이 일세(一世)에 빛이 나니 사람들은 장차 장상(將相)의 재목이라 일컬으나, 형님 되시는 휘(諱) 원개(元凱) 봉암공(奉巖公)께서 당시 정승(政丞)으로 계시면서 18조목의 상소(上疏)를 공민왕(恭愍王)께 세 번이나 올리셨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장단(長湍)에서 불도(佛道)를 물리치시고 유도(儒道)를 장려하시며 후학(後學)을 가르치시는 것을 낙(樂)으로 하시는 것을 보시고, 공(公)께서도 벼슬을 버리시고 시골집에 돌아오셔서 안자(顔子)같이 가난한 살림을 하시며 글과 거문고로 벗을 삼아 임천(林泉)에서 소요(逍遙), 자적(自適) 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시니 산소(山所)는 수원 정송(水原 貞松) 남곡(藍谷) 자좌원(子坐原)에 모시었다.

조선왕조(朝鮮王朝)에 들어와서 산소(山所) 위치(位置)가 융릉(隆陵) 해자(垓字)에 들어가서 그 때 법(法)으로는 의당 다른 곳으로 면례(緬禮)를 아니할 수 없었으나,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尹氏)와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가 공(公)의 후손(後孫)인 외외손(外外孫)으로 나라에서 특별히 예관(禮官)을 보내어 국내 경계(局內 境界)를 정해주고 그 후손(後孫)으로 하여금 정성껏 받들게 하였다.

배위(配位)는 숙부인(淑夫人) 용인이씨(龍仁李氏)이시고, 장자(長子)는 휘(諱) 선(善) 조봉대부 한성소윤(朝奉大夫 漢城少尹), 차자(次子)는 휘(諱) 의(義) 가선대부 검교 호조참판(嘉善大夫 檢校 戶曹參判)이시다.

묘소(墓所)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보통리 산 69 남곡(藍谷) 자좌원(子坐原) 합봉(合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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