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 반 상 식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

by "율문" 2018. 2. 17.

전주 김씨 시조 김태서(金台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이다. 김태서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1232년(고종 19)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추밀원부사(樞密院府使) · 상장군(上將軍) 등을 지냈으며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다. 1254년(고종 41) 식읍(食邑)인 경주(慶州)가 몽골군의 병화(兵火)로 인하여 폐허가 되자 가족을 데리고 전주(全州)로 이거하였으며 후에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되었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전주(全州)로 삼게 되었다. 전주 김씨 시조 김태서의 묘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모악산)에 위치해 있다. 아버지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낸 뒤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지내고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진 정평공(靖平公) 김봉모(金鳳毛)다.

가계도[편집]

  •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 -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
  • 2세(장남): 강릉군(江陵君) 태화(泰華)
  • 3세(장남): 정구(正矩)
  • 4세(장남): 계령(繼笭)
  • 5세(장남): 한공(漢公)
  • 6세(차남): 경보(景輔)
  • 7세(장남): 세린(世麟)
  • 8세(장남): 정평공(靖平公) 봉모(鳳毛)
  • 9세(장남): 문장공(文莊公) 완산군(完山君) 김태서(金台瑞)-전주김씨(全州金氏) 시조
    • 2세(장남) 장익공(莊翼公)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약선(若先)
    • 2세(차남) 문익공(文翼公) 기손(起孫)
    • 2세(삼남) 문간공(文簡公) 경손(慶孫)


역사[편집]

전주 김씨의 시조인 김태서(金台瑞)는 신라(新羅)의 56대 왕인 경순왕(敬順王)의 넷째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인데, 전주 김씨의 역사는 신라 김씨의 시조이자 전주 김씨 집안의 비조(鼻祖)인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부터 시작한다. 김알지 이래로 전주 김씨의 직계혈통은 내물왕(奈勿王), 지증왕(智證王), 원성왕(元聖王), 신무왕(神武王), 문성왕(文聖王), 경순왕(敬順王) 6분의 신라 왕을 배출하였다. 경순왕의 아들인 김은열은 시랑(侍郎)을 거쳐 평장사(平章事)를 지냈으며, 보국대안군(輔國大安君)에 봉해졌다. 김은열의 첫째 아들인 태화(泰華)는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으며, 태화의 아들 정구(正矩)는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 정구의 아들 계령(繼笭)은 공부시랑(工部侍郎)을 지냈다. 계령의 아들 한공(漢公)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냈다. 한공의 차남 경보(景輔)는 공부시랑(工部侍郎)을 지냈으며, 한공의 장남인 세린(世麟)은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세린의 아들 봉모(鳳毛)는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와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이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지냈으며, 완산군(完山君)과 정평공(靖平公)에 봉해졌다. 봉모의 아들이자 전주 김씨의 시조인 김태서(金台瑞)는 한림학사(翰林學士)에서 시작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상장군(上將軍),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수태보(守太保),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하였으며 전주군(全州君)에 봉해졌다. 사후에 문장공(文莊公)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김태서의 아들들인 약선(若先), 기손(起孫), 경손(慶孫)도 출세가도를 달렸는데, 김태서의 장남 김약선은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지냈으며,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또한 당시 무신정권의 수장 진양후(晉陽侯) 최우(崔瑀)의 사위이자 고려 원종의 장인이었다. 사후 장익공(莊翼公)에 추증되었다. 김태서의 차남 김기손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고, 사후 문익공(文翼公)에 추증되었다. 김태서의 삼남인 김경손항몽(抗蒙) 당시 큰 공을 세웠고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을 거쳐 대장군(大將軍), 전라도지휘사(全羅道指揮使),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인 최항(崔沆)의 시기를 받아 백령도에 유배되었다가 바다에 수장되었다. 사후 문간공(文簡公)에 추증되었다. 이후 김약선, 김기손, 김경손 형제의 자손들이 고려왕조의 주요 관직을 거쳤는데, 김약선의 아들 미(敉)는 사공(司空)에 올랐다. 김약선의 딸인 순경태후(順敬太后)는 고려 원종과 혼인하였고, 충렬왕을 낳았다. 김기손의 자녀들도 상장군, 좌승선(左承宣), 상서(尙書) 등을 역임하였고, 김경손의 자손 중에서 혼(琿)은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로 충선공(忠善公)에 추증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전주 김씨 집안은 명문가의 명맥을 유지하였는데, 김경(金敬)은 윤필상 경원부 도원수 휘하에서 여진정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자신의 식솔들을 거느리고 함경도로 이주하였고, 입북중시조(入北中始祖)로 받들어지고 있다. 김니(金柅)는 임진왜란 당시 김응서와 함께 왜군을 격퇴하였으며, 주사대장(舟師大將)과 공조참의(工曹參議)를 거쳐 병조참판(兵曹參判)과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역임하였다. 또한 선무공신(宣武功臣)과 청백리에 선정되었으며, 1612년에 천추사(天秋使)로 파견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김달혼(金達渾)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북도 의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섰다. 김치원(金致遠)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아 공을 세웠으며,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선조실록(宣祖實錄) 편찬에 기여하였다. 이후 대북파의 모함으로 삭탈관직을 당했으나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고 서흥부사(瑞興府使)에 이르렀다.

근현대에 와서는 북로군정서군에서 활약하였으며 1924년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의 순시선을 저격한 독립운동가 김관보(金官寶), 소설가 김동인(金東仁), 대한민국 제헌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동원(金東元), 시인 김광섭(金珖燮), 한양대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 김연준(金連俊),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金在淳), 시인 김규동(金奎東) 등이 있다.




'일 반 상 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성최씨는 경주김씨에서 분적  (0) 2018.04.08
조선시대 시간표  (0) 2018.02.18
촌수(寸數)와 항렬(行列)  (0) 2018.02.05
고려시대 관직표  (0) 2018.01.24
보문각  (0) 201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