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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문혜공(영규) 1세

수성최씨 시조 문혜공 양력

by "율문" 2018. 12. 22.

본성은 金씨로서 신라 경순왕 13세손으로 공부시랑 淑承공의 支孫이되시고, 고려 현종의 外裔시다. 원종2년(辛酉)에 탄강(誕降) 충렬왕 초 문과, 숭록대부 형조전서 보문각대경으로, 서경에서 학문가르쳐서 명망이 높았는데, 충렬왕때 수주(수원)지방 기강이 퇴패하고 이윤(彛倫)이 두상(무너져 상실됨)되어 거의 금수(禽獸)에 가까우므로 왕이 조당에 임하여 탄식하며 말하기를 너희 신하 중 누가 능히 나를 위해 이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 물으니, 공께서 개연히 말하기를 신이 다스리겠습니다 하고 자청하여 호장으로 나가 부사 안열과 한마음으로 백성을 효행과 의리로써 인도에 힘써 1년이 안되어 완속이 변하고 효제지향이 되니 왕이 가상히여겨 포상하고 충렬왕28년(壬寅)에 공덕이 崔巍라하여 崔씨로 사성하고 수성백에 봉하니 隋城崔씨가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후에 호남안무사로 계실 때 돌아가시니 文惠로 시호를 받으셨다.


  配:정경부인 이천서씨(父:시중랑 문한)
묘: 수원부 서쪽15리 어량천 삼봉산아래 병좌에 합봉, 지금 수원군 신매송면 어천리. 수주백성이 공의 덕의(德義)를 사모하여 각자 힘을 모아 이 유택을 마련하고 매년 절일(節日) 읍의 관리가 서로 인솔하여 제사를 차렸으며, 옛 비갈이 있었으나 도둑맞아 투장된 것이 발굴되었고, 숙종 때 단표(短表)로 고쳐 세웠다가 정종 경신에 신도비를 세우니 덕은 송환기가 글을 짓고 기계유씨 한지가 전서를, 창원황씨 운조가 비문을 썼다.
  묘:화성군 매송면 숙곡리 산81번지 1호.   ※ 매년 10. 1. 세제(묘제)를 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