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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앙공(태계)13세

수성최씨(隋城崔氏) 자앙공(子仰公) 태계 (泰階) 행장(行狀).

by "율문" 2019. 2. 15.

최태계 (崔泰)

수성최씨(隋城崔氏) 자앙공(子仰公) 행장(行狀).

 

시 대 : 조 선

: 1646丙戌(인조24)

: 1714甲午(숙종40)

경 력 : 대가[代加]교지(敎旨) 품계(品階)5통덕랑(通德郞)

직 업 : 학자(學者) 문인(文人)

성 별 :

자 녀 : 八男 八女

형 제 ; 태우(泰宇) 태숭(泰崇)

본 관 : 수성(隋城)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호()는 자앙(子仰) ()는 태계(泰階)이다.

조고(祖考)의 자()는 영백(榮伯) ()는 궐산(蕨山) ()는 길원(吉元)이고 학자(學者) 문인(文人)이며 5통덕랑(通德郞)이다. 부친(父親)의 자()는 명숙(明叔) ()는 후헌(后軒) ()는 수()이고 학자() 문인(文人)이며 5통덕랑(通德郞)이다.

배위(配位) 선산김씨(善山金氏)는 부() 3품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성발(聲發)의 딸이며, 배위(配位) 창령성씨(昌寧成氏)() 3품 절충장군(折衝將軍) ()하복()의 딸이다.

 

()1646년 병술(丙戌) 인조24)에 가덕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천성이 고결(高潔)하고 천품(天稟)이 온후(溫厚)하며 재질(才質)이 총명 탁월(卓越)하여 시서(詩書)와 백가어(百家語)를 능히 효통(曉通)하니 조부(祖父) 궐산공(蕨山公)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은 과거(科擧) 진사시(進士試)에 나갔으나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뜻을 두기보다는 도학군자(道學君子)들과 학문(學問)을 논하며 자연(自然)과 더불어 천문지리(天文地理)와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터득함이 내 뜻이라 하며 더욱 학문(學問)에만 정진(精進)하였다.

 

()의 부친(父親) 후헌공(后軒公)이 자질(子姪)에게 권학(勸學)을 하는 방도를 엄격하게 하되 엄동(嚴冬) 설한(雪寒)에도 밤을 새워 글을 읽으시니 때론 병을 얻어 몸소 자리에 누워 며칠간 식음(食飮)을 전폐(全廢)하시고 몸이 쇠약(衰弱)하게 되면 효()는 자식에 도리라 하면서 추운 엄동(嚴冬) 설한(雪寒)에도 가덕산(加德山) 삿갓봉에 올라 화살과 올무를 지니고 이틀 사흘 밤을 새워가며 토끼와 꿩 등 산() 짐승을 사냥해서 부모님께 봉양(奉養)하니 공()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 ()는 끝이 없다하며 동생들과 자식들에게도 효()를 가르치었다.

()의 부인 선산김씨(善山金氏)가 오자(五子) ()을 출산(出産)하고 산후(産後)에 원기(元氣)가 떨어지며 몸이 쇠약(衰弱)하게 되니

원기회복(元氣回復)을 위하여 용봉탕(龍鳳湯)을 끓여 드리고 제자(弟子)들과 더불어 반송 천()에 나아가 그물망에 잉어를 잡아 잉어탕을 정성껏 끓여 드려도 효과(效果)를 보지 못하므로 공()은 백방으로 의원을 동원하여 갖은 처방을 다 하였으나 결국 효과(效果) 없이 1694년 갑술(숙종20)에 졸()하니 슬픔에 쌓여 방황할 여유도 없더라.

갓난아이 五子 ()에게 모유(母乳)를 먹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마을 아낙네들에게 모유(母乳) 동냥해 가면서 키우니 때마침 귀인(貴人)창령성씨 (昌寧成氏)가 나타나므로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은 학자(學者) 문인(文人)으로 원통산(元通山)아래 궐산리(蕨山里)에 거택(居宅)을 마련하여 사랑채에서 자질(子姪)과 제자(弟子)들을 모아놓고 후헌공(后軒公)의 유고(遺稿) 三十여권을 가르치며 권학(勸學)의 도()를 엄격히 함은 물론 제자(弟子)들의 학문(學問) 정진(精進)에 낙()을 삼았다.

 

밤에는 글을 쓰고 책을 읽으니 공()의 맑고 고운(高韻) 글 읽는 소리에 지나가던 선비가 발길을 멈추고 경청(傾聽)하며 인재(人材)가 아깝도다 하였으니 공()의 학문(學問)에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유생(儒生)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고 조선시대(朝鮮時代) 대소과(大小科) 사마시(司馬試)에 참방하는 제자(弟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은 몸이 늙고 쇠약(衰弱)하여 1714(숙종40) 향년 68세 졸()하니 많은 제자(弟子)들이 찾아와서 슬퍼하며 시마복(緦麻服)을 입고 사림(士林)의 예로 장사(葬事)를 지냈다. ()은 빙부(聘父) () 성발(聲發)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재직할 때 종5품 통덕랑(通德郞)에 대가(代加) 교지(敎旨)를 받았다.

 

()八男 八女를 낳았는데 배위(配位)선산김씨(善山金氏)로부터 장자(長子)(),차남(次男)(), 3(三男)(), 4(四男)() 5(五男)() 4(四女)를 두었고, 배위(配位) 창령성씨(昌寧成氏)로부터 6(六男)(), 7(七男)(), 8(八男)()4(四女)를 두었다.

 

묘소(墓所)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 서상리 산 36번지 원통산(元通山) 에 해좌(亥坐)로 있고, ()선산김씨(善山金氏)는 후헌공(后軒公) 묘소(墓所) 언덕 위 임좌(壬坐)로 있으며, () 창령성씨(昌寧成氏)는 공()의 묘소 좌청룡(左靑龍) 10()쯤 나아가 해좌(亥坐)있다.

 

시제(時祭)201544일 첨악공(瞻嶽公) 후손 합동위패(合同位牌) 봉안식(奉安式)에 함께 봉안하고 음력1005일에 세일사(歲一)를 봉행(奉行)하다.

 

2019(己亥)

찬성공파(贊成公) 자앙공(子仰公) 행장(行狀) 저자(著者)

찬성공파(贊成公) 자앙공(子仰公)종중 회장 9세손(世孫) ()율문(栗文) 관혁(寬爀)과 종손 겸 총무이사 11세손(世孫) ()는 우생(又生) 덕희(德喜) 공동(共同) 편찬 [編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