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隋城 崔氏(수성최씨)

수성최씨 6세 통정공파 (사기)편

by "율문" 2019. 3. 27.

통정공의 휘(諱)는 사기(賜起)요 벼슬은 초산부사(초산부사)와 웅천현감 겸 웅천병마절제사(熊川縣監 兼 熊川兵馬節制使)를 지냈다. 공은 단종(端宗), 세조(世祖)때의 사람으로 단종 원년(1453년)에는 삼군진무(三軍鎭撫)를 지냈고, 세조 3년에는 웅천현감 겸 웅천병마절제사를 지낸 기록이 세조실록에 수록되어 있다.

 

부인은 숙부인진주강씨(淑夫人晉州姜氏)이며 어머님은 안동권씨 권시중의 따님이며 공의 아버님 휘(諱)는 세온(世溫)이신데 조선조 초에 벼슬길에 올라 지덕천군사(知德川郡事)와 내첨시윤(內詹寺尹)을 지낸 기록이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나타나 있다. 할아버지 휘(諱)는 선(善)이며 한성소윤(漢城少尹) 역임, 증조의 휘(諱)는 문개(文凱), 벼슬은 종부시령(宗簿寺令)이시며 수성백 3세로 우리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시는 분이다.

 

공은 자손이 없어 아우이신 이기(李起)의 아들 천령(千齡)으로 뒤를 이어 그 후손들이 양주,포천,동두천 등지에서 살고 있다. 아드님 천령은 관행사용(官行司勇)과 강서현령(江西縣令)을 지내셨으며 아들 일곱형제를 두셨다. 큰아들 정(汀)이 무후하고 둘째아들 홍(洪) 또한 아들이 없어 넷째 영(瀛)의 아들 응담(應淡)을 양자로 들여 종통(宗統)을 이었다. 공의 4대손 순(純)부터 포천으로 옮겨 세거세장지(世居世葬地)를 만들었다.

 

공의 손중에 가문을 빛낸 분은 하산(何山) 효건(孝騫)이시니 일찍이 문과에 합격하여 예빈시정(禮賓寺正)을 역임하시고 공의 10대손 치중(致重)은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치백(致白)은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지냈다. 13대손 태석(泰錫)은 당대의 학자로서 이름을 드높였으니 공의 음덕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깝게도 통정공의 묘는 계속 실전상태로 있다가 공의 17대손 명균(明均)이 포천군 가산면 감암리에 설단(設壇), 매년 10월 4일 시제를 봉행하고 있다.

 

1996년 수성백 24세손 통정공파 하산종친회장   종 태   근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