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는 몇 대 조상까지 지내야 하는 것일까? 원시시대에는 제의례의 의의가 자기 조상에게 보답하는 원천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보존의 본능에서 신명을 받들어 초능력자에게 기구하는 형태의 것이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보호를 위한 기구는 하늘이나 땅 또는 산과 물같이 거대하고 초능력적인 자연신이 대상이었다.
인지가 발달하면서 그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옮겨져 큰 돌이나 나무, 장군, 역사(力士), 거인 등의 신으로 좁혀지다가 마침내는 남의 신보다는 자기의 신인 조상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그 조상 숭모의 대표적인 제의례가 기제사인데 기제사의 대상을 어느 조상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많은 변천을 겪어왔다.
지위와 신분에 따라 달랐다.
중국 고대에서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제사할 수 있는 선조의 대수가 제사하는 당사자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한정되어 있었다. 고려 말엽 정몽주 선생이 제정한 ‘제례규정’에 보면 3품관 이상은 증조부까지 3대를 지내고, 6품관 이상은 2대, 7품관 이하 서민들은 부모까지만 제사토록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국조오례의>에는 명종 때부터 3품관 이상은 고조부모까지 4대 봉사, 6품관 이상은 증조부모까지 3대 봉사, 7품관 이하 선비들은 조부모까지 2대 봉사를 하고 기타 서민들은 부모까지만 제사지내게 되었다.
이런 신분에 의한 봉사조상(奉祀祖上)의 차별이 근세까지 이어지다가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양반 가문에서는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4대 봉사를 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그런데 조선 초기에는 양반이 전 인구의 10% 미만이었지만 갑오경장 이후부터는 90% 이상이 자칭 양반이라고 행세하게 되었으므로 제사도 누구나 4대 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말기부터는 가난한 서민들까지도 모두 4대 봉사를 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놈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4대 봉사를 한다는 것은 그 직계 자손(장자 장손의 가계)만이 해당 된다. 종법에 의하면 제사는 원래 적장자의 책임이며 그 밖의 아들들은 조상의 제사에 참여만 하고 이를 주관할 수 없다. 따라서 제사를 받드는 대수도 직계 자손을 기준으로 계산하게 되는 것이므로 부모만을 제사하는 집안도 있고 조부모까지 제사하는 집도 있다. 대종의 종손은 4대조뿐만 아니라 시조의 제사까지도 받들 책임이 있으며, 소종의 종손은 조상님 중에 불천지위(不遷之位)가 계시면 4대조 외에 한 분을 더 받들어야 한다.
4대 봉사는 불변인가?
글로벌화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계층의 현대인들은 4대 봉사를 꼭 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예전에 제정 되었다가 지키지 않아 폐기된 ‘가정의례준칙’에서 제사는 조부모까지 2대 봉사를 하라고 해도 4대 봉사를 고집하였는데, 요즘은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싫은데 옛 법이 중하다 보니 안 따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내기는 싫고 하니 이 문제를 어디에 물어 봐서 털끝만큼이라도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시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시속에 따르면 될 것이고, 옛 법이 중하다 싶으면 옛 법을 따르면 될 것인데 굳이 유교적인 해법을 구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거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쉽고 편한 쪽으로만 나아가려 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 살면서 옛날의 예법을 그대로 준수하여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따라 제사의 대수를 달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국가에서 예법을 제정할 수 있으나 형법처럼 강제할 수는 없다.
예법의 기본 정신은 ‘공경’과 ‘정성’이다. 그러나 공경과 정성은 말로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을 담은 절차와 형식 그리고 자기 절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법은 전통과 관습을 중시하되 고정불변의 지식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한 마음으로 재계하여 모시거나, 불경하여 대충 모시거나, 안 모시거나 하는 것의 차이는 자신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다만 어느 방법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판단은 스스로가 결정할 일이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박준서씨는
-성균관유도회 중앙위원
-국가공인 실천예절지도사
-(사)범국민 예의생활 실천운동본부 강사
-평택문화원 예절교육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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