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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반 상 식

수원최씨

by "율문" 2016. 4. 27.
본관명 수원(水原)
성씨명 최씨(崔氏)
본관소재지 경기도(京畿道) 수원시(水原市)
본관이칭
시조명 최정(崔靖)


본관 연혁

수원(水原)은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하며, 수성(隋城)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매홀군(買忽郡),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는 수성군(水城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수주(水州)로, 1271년(원종 12)에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수주목(水州牧)이 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 수원부로 되었다. 1362년(공민왕 11)에는 군으로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다시 도호부로 고쳤고, 세조 때에는 진(鎭)을 두었으며, 1789년(정조 13)에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의 진산인 화산(華山)으로 옮기고, 팔달산 동측으로 수원의 읍치를 이전하였다. 1793년에는 수원을 개성부‧강화부‧광주부와 같은 지위인 유수부(留守府)로 승격시키고, 1794년부터 수원성 축성을 시작하였다. 1796년에 축성을 완료하여 수원은 새로운 성곽도시로 변모했으며, 옛 읍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오늘날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인천부 관할의 수원군으로 되었다가, 1896년 경기도 수원군이 되었다. 1931년 수원면(水原面)이 수원읍(水原邑)으로 승격되었고, 1949년 수원읍을 분할하여 수원시로 승격시키고 나머지 지역은 화성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7년에 경기도청이 옮겨옴에 따라 수원은 명실상부한 경기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1988년 구제 실시로 권선구와 장안구를 설치하고, 1993년 팔달구(八達區)를 설치하였다. 1995년 화성군 태안읍 영통리가 팔달구로, 화성군 반월면 당수리‧입북리가 권선구로 편입되어 시역이 확장되었다.



崔(수원최씨)

 

 

본관(本貫): 수원(水原)

시조(始祖): 최정(崔靖):최상저

유래(由來):

 

수원 최씨(水原崔氏)는 최씨 득성시조(得姓始祖)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으로 경주 최씨(慶州崔氏)와 동원(同源)이다. 수원 최씨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이면서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두 계통으로 나뉘어 진다.

 

한 계통은 고려 때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역임한 최정(崔靖)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또 한 계통은 고려 예종 때 수주(水州)의 호장(戶長) 최상저(崔尙 )를 시조로 한다.

 

가문의 중요 인물

 

최누백

생몰년 미상. 고려 중기의 문신 · 효자. 본관은 수원(水原). 수원의 향리 ( 鄕吏 ) 상저(尙 鼻 )의 아들이다. 15세 때 아버지가 사냥하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자 그 호랑이를 죽이고 뼈와 살을 거두어 그릇에 담아 홍법산(弘法山) 서쪽에 안장(安葬)한 다음,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 ( 侍墓 )하였다.

시묘중인 어느날 잠깐 잠이 들었을 때, 아버지가 나타나 “ 숲을 헤치고 효자의 여막에 이르니 정(情)이 많으매 느끼는 눈물이 다함이 없도다. 흙을 져서 날마다 무덤 위에 보태니 소리를 아는 것은 명월(明月)과 청풍 ( 淸風 )뿐이로다.

살아서는 봉양(奉養)하고 죽어서는 지키니 누가 효(孝)가 시종이 없다 이를소냐. ” 라는 시를 읊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뒤에 과거에 급제하여 의종 때 기거사인 ( 起居舍人 )에 승진하였다.

1153년(의종 7)에는 기거사인으로 사신이 되어 금나라에 가서 용흥절(龍興節)을 축하하였다. 1155년 평장사 ( 平章事 ) 최자영 ( 崔子英 ),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양원준 ( 梁元俊 ), 좌사간 ( 左司諫 ) 박득령 ( 朴得齡 ) 등과 함께 왕의 국정(國政) 자문에 응하였다.

1158년에는 국자사업(國子司業)으로서 국자좨주(國子祭酒) 염직량(廉直諒)과 함께 승보시(升補試 : 生員試)를 맡아, 윤돈서(尹敦敍) 등 16명을 급제시켰으며, 뒤에 한림학사에 이르렀다

 

최자성(崔滋盛)

1065(문종 19)∼1143(인종 21). 고려 중기의 문신. 과거에 급제,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가 되었다. 1118년(예종 13) 급사중 ( 給事中 )으로 도(道)를 분담하여 군사를 선출하였고, 1121년 동북면병마사를 역임하였다.

1127년(인종 5) 동지추밀원사· 참지정사 ( 參知政事 ), 이듬해 검교사공 판공부사(檢校司空判工部事)·이부상서를 역관하였다. 1129년 상서좌복야 참지정사(尙書左僕射參知政事), 이듬해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 1131년 검교사공 중서시랑 판병부사(檢校司空中書侍郎判兵部事)가 되었다.

이듬해 평장사 ( 平章事 )로 지공거 ( 知貢擧 )가 되어 동지공거 ( 同知貢擧 )인 이부시랑 임존(林存)과 함께 과거를 주관하였으나, 부제(賦題)를 잘못내었다는 법사 ( 法司 )의 탄핵을 받아 파면되었다.

이어 중서시랑평장사로 복직되고 개부의동삼사 ( 開府儀同三司 )가 되었으나 이듬해 치사하였다. 관리로 치적이 있었으나 이자겸 ( 李資謙 )의 난 때 그의 집에서 일본 것을 사람들이 흠으로 여겼다.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최사위(崔士威)

961(광종 12) ∼ 1041(정종 7).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수주(水州 : 지금의 경기도 수원). 증조부 서천(徐遷, 書遷)은 호장 ( 戶長 )이었고, 할아버지인 한용(韓用)과 아버지 융예(融乂, 融藝, 融銳)는 상경출사(上京出仕)했으나 미관에 머물렀다. 어머니는 김해부 아간(金海府阿干) 유울행(庾鬱行)의 딸이다.

이후 자손들이 잇따라 고관에 올라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문벌귀족으로 번성하다가 무신의 난을 계기로 몰락하였다.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오른 듯하며, 목종 때 이미 시어사 ( 侍御史 ) · 호부시랑 등을 거쳐 형부상서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1009년(목종 12)에 김치양 ( 金致陽 )이 난을 일으켜 목종을 폐하려 했을 때, 대정문별감(大定門別監)에 임명되어 궁문을 폐쇄하고 국왕을 호위하였다. 1010년(현종 1)에 거란이 침입하자 통군사(統軍使)로서 통주(通州 :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에서 거란군의 공격을 막았으나 패배하였다.

다음 해에 참지정사 ( 參知政事 )로 승진했으며,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와 서경유수를 거친 다음 이부상서로 옮겼다. 1012년에는 동경유수를 없애고, 경주방어사(慶州防禦使)를 둘 것과 12주(州)의 절도사를 5도호(都護) · 75도안무사(道安撫使)로 대체할 것을 건의해 실행되었다.

내사시랑평장사 ( 內史侍郎平章事 )와 문하시랑평장사를 차례로 역임하였고, 1019년에 추충좌리동덕공신 청하현개국남(推忠佐理同德功臣淸河縣開國男)으로 봉해졌다. 1021년에는 광국공신(匡國功臣)이 더해지고 개국백 ( 開國伯 )으로 작진(爵進)되었다.

관직도 검교태사 수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檢校太師守門下侍中判尙書吏部事)에 올라 총재( 愼 宰)가 되었다. 이 때 주현의 장리(長吏 : 이부의 長) 칭호를 정리하였다. 즉 군 · 현 이상은 호장으로, 향(鄕) · 부곡 ( 部曲 ) · 진(津) · 정(亭) · 역(驛) 등에서는 장(長)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거란의 동경장군(東京將軍) 대연림 ( 大延琳 )이 반란을 일으켜 흥료국 ( 興遼國 )을 세우고 고려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국방을 강화하면서 사태를 관망하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다.

1027년에 태자태사(太子太師)를 겸하였으며, 1031년 내사령 ( 內史令 )으로 치사(致仕)한 뒤 1041년(정종 7)에 죽었다. 1052년(문종 6) 현종묘정(顯宗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숙(貞肅)이다.

 

최원(崔原)

고려 때 신호위보승별장(神虎衛保勝別將)을 역임 중 조선이 개국되자 금부도사(禁府都事)에 임명되었으나 취임을 거부하여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최유정(崔有井)

조선 중종(中宗) 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고 길성군(吉城君)에 봉해진 유정(有井)이 유명하다.

 

최명원(崔明遠)

명원(明遠)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1985년에 실시한 인구 조사 결과 수원 최씨(水原崔氏)는 남한에 총 3,558가구, 15,44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전 <한미족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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