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현좌(玄佐). 본관은 전주(全州). 청주 송면 출신.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운징(李雲徵)이며, 윤휴(尹鑴)의 손서(孫壻)이다.
당색이 과격한 소론이었던 그는 영조의 즉위로 소론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정희량(鄭希亮)·이유익(李有翼)·심유현(沈維賢)·박필현(朴弼顯)·한세홍(韓世弘) 등 소론 과격파와 갑술환국 이후 정계에서 물러난 남인들과 공모하여 밀풍군(密豊君) 탄(坦: 昭顯世子의 증손)을 추대하고 무력으로 정권쟁탈을 꾀하였다.
스스로를 대원수라 자칭하고 1728년(영조 4) 3월 15일 상여에 무기를 싣고 청주에 진입, 충청병사 이봉상(李鳳祥), 군관 홍림(洪霖), 영장(營將) 남연년(南延年) 등을 살해하고 청주성을 점령하였다. 이어서 각처에 격문을 돌려 병마를 모집하고 관곡을 풀어 나누어주는 한편, 서울을 향하여 북상하여 목천·청안(淸安)·진천을 거쳐 안성·죽산에 이르렀다.
이 때 반란진압을 위하여 출동한 도순무사 오명항(吳命恒)의 관군과 싸워 안성에서 패하자 죽산으로 도피하였으나, 계속적인 추격으로 산사에 숨었다가 신길만(申吉萬) 등 마을사람에게 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 해 3월 26일 친국에서 역모의 전모를 공술하고 다음날 대역죄로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능지처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