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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반 상 식

진주소씨(진산소씨) 풀무골전설애기

by "율문" 2016. 5. 1.

송북동 우곡(牛谷)마을은 소골실상은 소(牛)와 관련 있는 소골도 우곡도 아니다


그 옛날 고려 때 도일, 예좌울, 칠괴, 송북 일대를  개척하여 번성한 당시에 세도 좋은 진주 소(蘇)씨
평택지방의 큰 호족이었더라

공민왕때(1360년경) 소골에 사는 소정승 그는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숭상 받던 큰 사람 당시 조정의 힘을 받은
젊은 승녀 신돈이 개혁을 일으키자 이에 반발한 소정승 반란을 위해 불악산 골짜기에 대장간 세우고
병장기를 만들었더라

그러나?
기습 공격 받은 소정승은 완패하여 병장기는 우물에 묻어 버리고 소씨 삼족 멸망한 후 묘혈을 파헤치니
팔 다리가 덜 자란 용이 나왔다는 전설도 있더라 소골, 풀무골 소정승 명문가가 살던 마을 소골이라 이름하고
병장기를 만드는 대장간이 있던 곳 풀무골이라 일컸더라

소골은 송북동 우곡마을의 자연지명이다. 우곡은 예로부터 진주 소씨의 동족마을이었다. 가문의 전승에 따르면 진주 소씨는 고려 때만 해도 독고동에서 송북동, 도일동, 칠괴동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였다고 한다.

또 명문거족으로서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어 이들만 별도로 ‘진산소씨’로 불려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조선전기만 해도 가문의 명성이 하늘을 찔렀고, 명문가에서는 소씨 집안과 혼인을 맺기 위해 줄을 섰다.

현재도 명맥이 유지되는 도일동 원주 원씨, 독곡동 수성 최씨, 칠괴동 청주 한씨가 진주 소씨와 혼인관계를 통하여 입향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명문가로서 입지가 공고했던 진주 소씨는 1728년(영조 4년)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면서 멸문지화를 당하였다.

구전에는 소정승이라는 인물이 현명한 며느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정하였다가 크게 패하였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한다. 지금도 소정승이 병장기를 만들기 위해 대장간을 세웠던 곳을 풀무골이라고 하며, 소골 뒤쪽 부락산 기슭에는 진주소씨 묘역이 남아 있어 옛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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