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도 집안 문중 족보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해 보세요!
1) 각 집안 문중 족보에 윗조상님 5대조까지 0.자식부터 1. 본인 2. 아버지 3.할아버지 4.증조할아버지
5. 고조할아버지. 성함(휘자)가 문중항렬표(돌림자)와 일치하게 등제되여 있는지 ?
2) 집안 문중 조상님 산소. 또는 사당에서 시제 봉행할때 할아버지.아버지께서 .참석하셨거나
본인께서 참석하여 제례봉행 하는지?
3) 집안 문중 대종회. 소종회. 및 각 집안 종친회에 할아버지.아버지.께서 참석하신걸 보았거나
또는 본인이 참석하고 있는지.?
4) 집안 문중 5대 조 후손 가족 10촌이내 형제 자매들 성함을 알고 있는지?
5) 집안 문중 족보에 본인부터 ~시조 조상님 함자(휘)을 모두 알고 있는지 또한 어느파라고 하는데 000공파 조상님 휘자(성함)은 알고 있으면 000공파 라고 하는지 ?
위 5가지 내용 중에 3문장 정도 모르면 가짜라고 애기 할수있습니다.
최 0 0 처럼 비석에 수성최씨隨(따를수)는 가짜이고 족보에도 없고 항렬표 돌립자도 안쓰고(없고)
(진짜) 수성최씨는 隋(수나라수) 입니다. 가짜 000씨라고 듣기 싫으면 문중 족보에도 올리고 항렬대로 이름 짓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성씨의 역사
조선초기 성은 양민에게 까지도 보편화되었으나 노비와 천민계급 등은 조선 후기까지도 성을 쓸 수가 없었다. 양반 10% 중인10%상민30만 성이 있고 천민(쌍놈)50%은 성은없고 이름만 있었다 그러나, 1909년 새로운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 어느 누구라도 성과 본을 가지도록 법제화가 되면서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성을 취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를 기회로 성이 없던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호적을 담당한 동(洞)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 주기도 하고, 머슴의 경우 자기 주인의 성과 본관을 따르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명문집안의 성씨를 모방하여 성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성씨의 종류수가 더욱 늘어났다. 따라서 1930년 국세조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성씨가 많았졌다.
족보의 의의
족보(族譜)는 성씨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자료의 하나로 시조(始祖) 부터 역대 조상의 얼과 우리나라의 역사가 담겨져 있으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이 족보에 실려있어 나와 집안의 뿌리를 알수있는 한 집안의 역사책이다. 이에따라 옛날부터 족보는 집안의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이를 대할때는 상위에 모셔놓고 정한수를 떠서 절을 두번한 후에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조상을 대하듯 하였으며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이처럼 소중하게 여겨온 족보가 해방후의 서양화와 지금의 핵가족 제도가 되면서 봉건사상의 유물로만 생각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이 일고 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에서, 또 지금도 '근본이 없는 사람' 으로 치부되었을 때 그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들이 족보를 왜 그렇게 소중히 여겼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족보는 '피의 기록이며 혈연의 역사' 이다. 우리 조상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지켜온 족보를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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