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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악공(세용) 9세

수성최씨(隋城崔氏) 궐산공(蕨山公) 행장(行狀).

by "율문" 2019. 1. 29.

최길원(崔吉元)

수성최씨(隋城崔氏) 궐산공(蕨山) 행장(行狀).

 

시 대 : 조 선

출 생 : 1585乙酉(선조 18)

사 망 : 1643癸未(인조 21)

경 력 : 대가[代加]교지(敎旨) 품계(品階) 정5통덕랑(通德郞)

직 업 : 학자(學者) 문인(文人)

성 별 :

자녀 : 3

본 관 : 수성(隋城)

본관은 수성(隋城)이시며 자()는 영백(榮伯) ()는 궐산(蕨山) ()는 길원(吉元)이시며 학자(學者) 문인(文人)이시고 대가(代加) 정5(正五品) 통덕랑(通德郞)이시다.

조고(祖考)의 자()는 치운(致雲), ()는 첨악(瞻嶽) ()는 세룡(世龍)이시며 대가(代加) 4(從四品)조봉대부(朝奉大夫)이시. 부친(父親)의 자()는 급고(汲古) ()는 양호(楊湖) ()는 급()이시며 대가(代加) 정5통덕랑(通德郞)이시다.

배위(配位) 평해황(平海黃) ()는 증() 공조참의(工曹參議) () 응성(應晟)이시며, ()는 사마(司馬) ()이시다.

 

()께서는 1585(선조18)에 태어나시어 가정교육도 범연(凡然)치 아니 하거니와 품자(稟資)가 온후(溫厚) 준수(俊秀)하시고 지행(志行)이 고결(高潔)하여 글 읽기를 좋아하시고 시문(詩文)에 능하시었다. 그러나 과거(科擧)에 참방(參榜)하지 못하시고 우연히 탄식해 가라사대 득실(得失)은 하늘에 있는 것이요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니 나의 마음에 좋아하는 대로 하신다 하시고, 과업(科業)을 폐하시고 자손을 가르치시며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시고, 삼을 심어 길삼을 권장하시며, 벼슬을 권하는 자 있으면 말씀하시기를 안자(顏子)

나의 스승이라 다시 무엇을 구 하리오하시며 두문정거(杜門靜居)하시며 경술(經術)에만 전념(專念)하시되 진리를 알아서 실지로 행하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시니, 원근(遠近) 후학(後學)들이 책을 끼고 와서 배우는 자 많으니 공()의 문하(門下)에서 공부한 자로 누구나 모두 선비의 지조(志操)가 빛나서 묻지 않아도 선생의 제자인줄로 안다 하더라.

당시 명문(名文)의 자제로서 문장으로 유명한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찾아와서 보고 글을 지어 드렸으니, 그 글은 아관시례택(我觀詩禮宅) 내가 시와 예를 숭상하는 집을 와서 보니, 궐리불허명(闕里不虛名) 궐리(공자의 출생지)라는 것이 헛된 것이 아닐세, 동복능언어(童僕能言語) 부리는 하인들도 말씨가 예절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아동해송영(兒童解送迎) 어린 아이들도 손님을 맞이하고 전송하는 범절을 아는구나, 학우경제책(學優經濟策) 배운 것은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건질만 하지만, 신탈단장정(身脫短長程) 몸은 세상 희비(喜悲) 마당에서 벗어났더라, 교계무신구(交契無新舊) 사귄 벗은 신구(新舊)가 없으니, 의의원객정(依倚遠客情) 헤어지기 섭섭한 먼 나그네 정일세. 이것을 보더라도 공()의 학행(學行)이 얼마나 고명(高明)하셨던 것을 알 수 있더라.

슬프다 공()의 재덕으로 한번 세상에 나가셔서 그 배우신바 포부(抱負)를 펴보실 기회를 얻으셨던들 그 위대한 공적이 어찌 옛날 사람에게 양보(讓步)하셨으리요 만은 아깝게도 그 때를 얻지 못하시고 마침내 산림처사(山林處士)로 여년(餘年)을 보내셨으니 참으로 가석(可惜)한 일이나 옛적으로부터 재덕(才德)을 겸비(兼備)하고도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깨끗이 숨어서 사는 이가 허다하였으니 공()이 때를 만나지 못하신 것이 공()의 맑으신 지조(志操)에 무엇이 해로우리오. 다만 자손이 번성하고 문학(文學)이 계승(繼承)되어 아드님 삼형제분이 모두 문학으로 이름이 나시와 대대로 문학이 끊이지 아니하는 것은 다 공()의 유풍(遺風) 여력(餘力)인가 하더라.

 

()은 부친의 빙부(聘父) () 의수(義秀)께서 한산군수(韓山郡守)재직하실 때 대가(代加) 정5(正五品) 통덕랑(通德郞) 교지(敎旨)를 받으시었으며, 향리(鄕里)인 궐산리(蕨山里) 궐미에서 여년(餘年)을 보내시다가 1643년 정월 12일에 향년(享年) 59세에 졸()하시다.

 

()께서는 3을 낳으셨는데 장자(長子)의 자()는 명보(明甫) ()는 정()이시며 학자(學者) 문인(文人)이시고 대가(代加) 정5(正五品) 통덕랑(通德郞)이시다.

차자(次子)의 자()는 명숙(明叔) ()는 후헌(后軒) ()는 수()이시며 학자(學者) 문인(文人)이시고 대가(代加) 정5(正五品) 통덕랑(通德郞)이시다.

삼자(三子) 의 자()는 자문(子文) ()는 필()이시다.

 

묘소(墓所)는 강원도 춘천시 서면 서상리 산 42번지 원통산(元通山) 첨악공(瞻嶽公) 묘소(墓所) 뒤 해좌(亥坐) 합봉(合封)으로 모시었다.

 

시제(時祭)201544일 첨악공(瞻嶽公) 후손 합동위패(合同位牌) 봉안(奉安)시 함께 모시어 음력1005일에 세일사(歲一)를 봉행(奉行)하다.

 

찬성공파(贊成公궐산공(蕨山) 행장(行狀).  저자(著者)

찬성공파(贊成公) 후헌공(后軒)종중 회 장 10세손(世孫) ()율문(栗文) 관혁(寬爀)

       종 손 겸 총무이사 12세손(世孫) ()우생(又生) 덕희(德喜) 공동(共同) 수정(修正) 편찬 [編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