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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공(원개)3세 안양공파(경)5세

수성최씨 세조3세 원개(元凱)호(봉암공)

by "율문" 2012. 7. 3.

 

 

 

 

공(公)의 고(考)는 휘(諱) 원개(元凱) 봉상대부(奉常大夫) 사헌부집의(司憲府 執義) 삼사좌사(三司左使) 서경유수(西京留守)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平章事)의 장자(長子)이시고, 벼슬은 판전교소윤(判典校少尹) 청송감무(靑松監務), 아조(我朝)에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兵曹參判 兼 同知義禁府事)이시다.

배위(配位) 증(贈) 정부인(貞夫人) 수원차씨(水原車氏), 증(贈) 정부인(貞夫人) 수원백씨(水原白氏) 증(贈) 종부령(宗簿令) 민구(敏球)의 여(女)이시고, 장자(長子)는 휘(諱) 경(涇) 증(贈) 순충보조공신(純忠輔祚功臣)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 수성군(隋城君) 시호(諡號) 안양공(安讓公)이시며, 차자(次子)는 휘(諱) 온(溫) 강릉부사(江陵府使)이시다.

묘소(墓所)는 시조조후 병좌(始祖兆後 丙坐) 합봉(合封)

 

 

 

봉암공유고

의 율리사 3편
: 율리[혹시상촌]는 중국 진대에 은사로 유명하던 도잠(陶潛[자:연명,호:오류선생]이펑쩌 현령으로 있다가 뜻이 있어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를 지어 읊으며 고향에 돌아와 국화를 심어 술 빚어서 마시고 한이라는 새를 벗삼아 거문고를 타며 유유자적하였다.

1. 風雨凄凄欲降霜, 栗里村在何方, 五柳深掩柴荊門, 是非不曾到菊黃, 何以破吾醒酒一樽,
   풍우처처용상강, 율리촌재하방, 오류심암시형문, 시비부증도국황, 하이파오성주일준,

   何以亂吾耳琴一張, 一張琴一曲猶堪論羲皇, 一樽酒一夢猶堪見君王.
   하이난오이금일장, 일장금일곡유심론희황, 일존주일몽유심현군왕.
    [보기]

1. 풍우는 써늘하여 서리가 내리려는데, 율리촌은 어디에 있느냐, 다섯그루 버드나무가 싸리문을 깊이 가렸으니, (세상의)시비가 (울타리의)황국에 더이상 이르지 않는도다. 무엇으로 나를 또 취하게 하리오? 술이 한동이오! 무엇으로 내 귀를 요란하게 하리요? 거문고가 한장이다! 거문고 한 곡조에 희황을 논하고, 한동이 술을 마시고 꿈에 우리 임금을 보노라.

2. 風雨漠漠日欲昏, 何處是栗里村, 柴桑江水淨如練, 塵埃不曾到衡門, 交契何所托鷳一隻,
   풍우막막일욕혼, 하처시율리촌, 시상강수정여련, 진애부증도형문, 교계하소탁한일척,

   素心誰相對月一輪, 一輪月願隨孤影照至尊, 一隻鷳願與長鳴訴哀寃.
   소심수상대월일륜, 일륜월원수고영조지존, 일척한원여장명소애원.  
 [보기]

2. 풍우 막막하고 날은 저물고자 하는데, 어느 곳이 율리촌이냐, 시상강물은 깨끗하여 비단 같으니 티끌조차 형문에 이르지 못하리, 누구를 친구로 사귀랴 한이란 새가 한마리 있구나, 깨끗이 비운 마음은 누구를 대하리오 달이 한바퀴 떠도는구나, 한바퀴 도는 달을 따라 우리 임금께 고영을 비춰주기 바라며, 한마리 한새와 더불어 울며 이 애원을 호소해 보고싶구나.(寃:억울한 죄로 원통함을 뜻하는 글)

3. 天色寒夜色闌, 栗里處士去不還, 去不還 綠水及靑山, 靑山何所有出峀雲, 綠水何所有垂釣竿,
   천생한야색난, 율리처사거불환, 거불환 록수급청산, 청산하소유출수운, 녹수하소유수표간,

    峀有雲身將淸影同漫漫, 竿有釣淚隨垂絲共潜潜.[絲 = 綠자 같고, 潜潜=澘澘에 가깝게 쓰였음]
    수유운신장청영동만만. 간유표루수수사공잠잠.
   [보기]

3. 하늘 빛은 차고 밤 빛은 늦었는데, 율리처사는 가고 돌아오지 않는구나,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은 녹수와 청산에 있음이니. 청산은 어떤 곳인가 메뿌리에 나오는 구름이 있고, 록수는 어떤 곳인가 낚시대를 드리는 곳이라, 메뿌리 구름과 몸은 장차 맑게 갤 것이고 또한 한가로이 될 것이며, 장대에 드리운 눈물은 낚시줄 따라 함께 잠기리라.

(봉암공께서 고려 충렬왕30년 갑진에 나셔서 춘추 40이 넘도록 벼슬에 뜻을 두지 않으시고 하륜, 권중화(2인 공히 이조에 정승이 됨), 이첨 등 여러 문생과 더불어 정주지학(程朱之學)을 탐구하시다가 다시 경국제세의 대지를 지니시고 공민왕2년 사에 문과에 급제하신 후 벼슬이 사헌부집의로부터 서경유수 문하시랑동평장사에까지 이르시는 동안에 왕은 괴승 신돈을 국사로 신봉하여 국정이 날로 그릇됨을 보시고 분연이 18조의 시폐소를 세번이나 왕에게 상소를 하시다가 결국 왕의 노여움을 사서 청풍군으로 귀양까지 가시는 등 난정광정에 헌신하시다가 왕이 23년만에 승하하시고 신돈의 아들 신우(신돈이 왕의 無子함을 기화로 임신중인 자기의 애첩을 왕에게 바쳐 낳았으므로 왕우라 함)가 왕위에 나가는 것을 보시고 선생께서는 신씨조정에서 벼슬할 수 없다 하시고 그 아우되시는 종부령공과 더불어 장단 봉암동에 돌아가서 부흥정이라는 정자를 지으시고 문인들과 함께 시례강론으로 낙을 삼으시다가 이태조 일파에서 신우 신창 부자를 주살하고 다시 왕씨(공양왕 명요)을 옹립하였으나 선생의 지우(벗)시요 겸하여 처종숙되시는 포은공이 선죽교에서 무참한 해를 당한 후 국세가 더욱 기울어가는 것을 보시고 이 가사를 지으시고 비분강개하신 회포를 호소하는 동시에 문인들에게 행동을 삼가라는 당부를 하시고 공양왕 3년 신미 8월에 춘추 88을 일기로 하시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신지 만1년인 임신 7월에 고려 역사는 끝막았으니 선생께서는 고려왕조와 운명을 같이 하시니라 그 후 문인 이첨이 부흥정시를 지어 선생님을 추모하는 회포를 호소하였다.
  부흥정시:이첨의 호는 쌍매당이오 이조의정사
    [日夕和風至 花柳含奸姿 枋徨感前事 此亭空遺基 講論今寂寞 何人致於斯 江山更無主 小于易生悲 ]
      일석화풍지 화류함간자 방황감전사 차정공유기 강론금적막 하인치어사 강산갱무주 소우역생비

    (낮과 밤으로 화한 바람이 부니 꽃과 버들이 고운 자태를 머금었더니 이제와서 방황하면서 옛 일을 생각하니 이 정자는 빈터만 남았도다 글외는 소리가 이제 적막하니 누가 다시 이것을 이르리요. 강산에 다시 주인이 없으니 내가 이것을 슬퍼하노라.

賜姓紀元六百六十年丁未秋 十八世孫 基衡 再拜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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