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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공(원개)3세 안양공파(경)5세

수성군 묘 및 사당

by "율문" 2015. 3. 15.
 
 

 

 

 

수성군 묘 및 사당

 

 

 

 

 

'향토유적 제4호' 수성군 묘 및 사당

 

이번호에서는 조선 초기의 무신이며, 이시애(李施愛)의 난 토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우고, 같은해 명나라를 침범한 이만주의 군사를 막기 위한 조선지원군으로 참전, 큰 공을 세워 1468년 병조참판 수성군에 봉해지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된 최유림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수성군 묘 및 사당'을 찾았다. 평택의 역사여행 지면을 통해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들러봄으로써 우리 조상들의 삶의 자취와 함께 우리 지역의 지역의 문화유산에 대한 독자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이 높아지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 주>

 

■ 1468년 병조참판 수성군에 봉해져

평택시 독곡동 산 53번지에 소재한 향토유적 제4호인 '수성군 묘 및 사당'은 조선 세조 ~ 명종때 활약하던 무신 최유림(崔有臨 1426~1471)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최유림장군은 본관은 수성(隨城)이고 자는 자앙(子昻)으로 시조 최영규(崔永奎)의 6세손이며, 세종8년(1426)~성종2(1471)의 조선 초기의 무신이다. 1450년(세종 32년) 무과에 급제하여 고성현령, 의금부진무 등을 역임하였고, 1455년(세조 1년) 사직(司直)으로서 세조 즉위의 공으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1464년(세조 10) 중추원부사로 진하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전라도처치사로 나갔으나 앞서 명나라에 갔을 때 사무역(私貿易)을 하였다는 혐의를 받아 고신(告身)을 박탈당하고 지방으로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 토벌에 참여하여 공현위장(控弦衛將)이 되어 충청도병 1,000명을 이끌고 석장현(石場峴)싸움에서 적장 김말손(金末孫)을 사로잡는 등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오위장에 임명되는 한편 수성군에 봉해졌다. 같은해 명나라를 침범한 이만주의 군사를 막기 위한 조선지원군으로 참전, 큰 공을 세워 1468년 병조참판 수성군에 봉해지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471년(성종 2년) 병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인 독곡동으로 낙향하여 타계하였다. 이에 당시 임금이었던 성종이 슬퍼하며 안양(安襄)이라 시호하고, 자헌대부 병조판서를 증직하는 한편, 진위군 우동(牛洞)에 치장(治葬)하도록 하며 신도비와 사당을 세워 후손이 받들도록 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이에 수성최씨 안양공파의 맥이 이때부터 이곳에서 이어져가게 되었다.
 

 

■ 1982년 6월 수성군 사당 신축

수성군 사당은 본래 진위현 탄현면 오좌동(현 평택시 독곡동 262번지)에 위치하고 있었고, 본관 5평 6홉, 외삼문 2평 5홉이었다. 500여년 동안 10여회에 걸쳐서 중수하였으나 건물이 낡아 더 이상의 수리와 보수가 곤란해지자 1979년 문중에서 다시 신축하기로 하여 1980년 4월 철거하고, 구 사당 주위의 종중산(宗中山) 182평을 대지로 조성하였으며, 1982년 본관 11평 1홉, 외삼문 5평, 담장 110m의 규모로 신축을 시작해 이듬해 6월 준공되었다. 한편 사당 옆에 세워진 신도비는 본래의 것은 마멸되어 없어져 1972년 다시 세웠다.

현재 건물의 배치는 계단을 20여단 오르면 외삼문(外三門:바깥 담에 세칸으로 세운 문)인 앙충문(仰忠門)과 사당인 수성군사우로 구성되어 있고, 주위의 벽돌 담장은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하며 길이는 110m정도 둘러싸여 있다. 수성군 사당은 정면 3칸으로 기단을 쌓은 후 화강석 원형 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다. 
 

 

맞배지붕이고 규모는 11평 1홉이며, 외삼문인 앙충문은 솟을 대문으로 5평이다. 우측에는 최근에 만든 '수성 최씨 시조 수성백 문혜공 휘 영규 육세손 정충적개공신 가선대부 수성군 겸 우위장군 행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휘 유림 행정록'이 있다. 사당 바로 뒤쪽으로 여러 개의 무덤이 보기 편하게 펼쳐져 있는데, 모두 수성 최씨 후손들이라고 한다.

1971년 7월 11일 평택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성최씨 종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서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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